Liste des monarques de France
여러 분파의 골르와 족이 서로 싸움을 멈추지 않는 가운데, 훈족의 이동으로 시작된 민족 대이동으로 여러 종족들이 프랑스 땅에 정착하면서 영토 분쟁이 시작되는데……
메로뱅 왕조 Merovingiens 498-768
서로마가 망하면서, 춘추전국 시대이던 프랑스 땅은 481년 ‘끌로비스 Clovis’에 의하여 통일이 되고, 왕으로 등극하는 498년 ‘메로뱅 왕조 Merovingiens’를 세웁니다.
역사는 “이어지는 동선”으로 보면 여행이 더 재밌어져요.
관심 시대/인물에 맞춰 포인트가 끊기지 않게 루트를 엮어드립니다.
관심 주제만 알려주세요
카롤링 왕조 Carolingiens 768-987
이 후, 프랑크 족 ‘샤흘르마뉴 Charlemagne’의 정복으로 현재의 북부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를 포함하는 거대한 프랑크 제국을 세우며 ‘카롤링 왕조 Carolingiens’가 768년부터 시작됩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광장에 서 있는 동상이 바로 유럽 최초의 신성로마제국 대제 ‘샤흘르마뉴’!!!!
까페 왕조 Les Capetiens 987-1328년

* 위그 까페 Hugues Capet (941-996) : ‘일 드 프랑스‘의 대 영주인 ‘프랑스 백작 Comte de France’이 987년 6월1일 프랑스의 첫 왕으로 선출!!!! 생전에 아들을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처음으로 세습체제를 만들고 996년 10월 24일 사망
* 호베르 2세 Robert II (970-1031) : ‘위그 까페 Hugues Capet’의 아들로 970년에 ‘오를레앙 Orleans’에서 태어나 988년 이탈리아 공주인 ‘호잘라 Rosala’와 결혼을 하고, 989년 이혼을 하면서 당시 교황인 ‘그레고리 5세’에 의하여 교단에서 축출당함

* 앙리 1세 Henri I (1008-1060) : 1008년 ‘호베르 2세’의 셋째로 태어나 1044년 ‘마틸드 Mathilde’와 결혼 후 이혼하고, 1051년 러시아 공작의 딸 ‘안느 드 키에브 Anne de Kiev’와 결혼. 그 아버지에 그 아들!!!
* 필립 1세 Philippe I (1052-1108) : 1060년 8월 4일 8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1108년 7월 31일 ‘믈랑 Melun’에서 사망하는데, 재위 기간에 노르망디 공작인 ‘기욤 Guillaume le Conquérant’ (정복 왕 윌리엄)’이 1066년 영국을 정복하여 ‘노르망 왕조’를 세움
* 루이 6세 Louis VI (1081-1137) : 1108년 7월 30일 왕위에 올라 영국왕 ‘앙리 1세’, 독일 황제인 ‘앙리 4세’와 전쟁을 하여 프랑스를 지키고 1137년 8월 1일 파리에서 사망.

* 루이 7세 Louis VII (1120-1180) : 1137년 ‘알리에노흐 다끼텐느 Alienor d`Aquitaine’와 결혼하여 1152년 이혼. 왕비 ‘알리에노흐’가 후에 영국 왕이 되는 ‘앙리 쁠랑타즈네 Henri Plantagenet’와 같은 해에 재혼하면서, 부인도 잃고 보르도 지방의 땅도 잃고….
* 필립 오귀스트 Philippe II Auguste (1165-1223) : 1180년 9월 18일 왕위에 올라 1203년‘노르망디 Normandie’ 지역을 획득하고, 1189년 프랑스 중부지방 ‘오베르뉴 Auvergne’ 지역을 획득하고, 1213년 ‘샹파뉴 Champagne’지방을 병합하였으며, 제 3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 하고 1223년 7월 14일 ‘망트 Mantes’에서 사망
* 사자왕 루이 8세 Louis VIII le Lion (1187-1226) : 노르망디 공작 ‘기욤 Guillaume le Conquérant’ (정복 왕 윌리엄)이 세운 영국의 노르망 왕조로 부터 ‘앙구무와 Angoumois’, ‘리무쟁 Limousin’, ‘뻬리고흐 perigord‘, ‘쁘와뚜 Poitou’ 지역 획득. 프랑스의 황금싸라기 영토를 얻은 셈!!

* 생 루이왕 (루이 9세) Saint-Louis (1214-1270) : 1250년에는 이집트의 ‘슐탄 Sultan’과 십자군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었고, 1254년 막대한 돈을 지급하고 석방되어 프랑스로 돌아오면서 ‘생트 샤펠 la Sainte-Chapelle‘을 건설하고, 예수가 썼던 ‘가시 면류관’과 십자가 조각, 대못 구입
* 필립 3세 Philippe III (1245-1285) : 1270년에 왕위에 올라 왕족의 영토를 넓히었고, 1285년 10월 5일 남쪽의 ‘뻬흐피냥 Perpignan’에서 사망. 루이 9세가 자신의 자식들과 후손들이 묻히기 위하여 세운 ‘흐와요몽 수도원 Abbaye de Royaumont’에 묻힘

* 필립 4세 Philippe IV (1268-1314) : 필리프 4세와 로마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대립이 있던 중에 1303년 아나니 사건(별장에 있던 교황을 습격)이 터지고, 프랑스인 추기경 ‘베르트랑 드 고트’가 교황 ‘클레멘스 5세’로 즉위하면서 아비뇽 유수
* 루이 10세 Louis X (1289-1316) : ‘부르고뉴 지방‘이 분리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1305년 종형제 지간인 ‘마거리트 드 부르고뉴 Marguerite de Bourgogne’와 결혼하지만, 왕비를 교살한 것으로 의심을 받음
* 필립 5세 Philippe V (1294-1322) : 형인 ‘루이 10세’가 죽은 후, 왕위를 이을 유복자가 태어나지만, 5일만에 조카를 암사하고 왕위에 오름
* 샤흘르 4세 Charles IV Le Bel (1294-1328) : 1328년 2월 1일 ‘벵센느 Vincennes‘에서 후손을 남기지 않고 죽으면서 ‘까페 왕조’의 직계 족보는 끊김. 프랑스인들이 새로운 왕을 세운면서 영국왕 ‘에드워드 3세 Edouard III’가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는백년전쟁이 시작
발르와 왕조 Les Valois 1328-1589
* 필립 6세 Philippe VI de Valois (1293-1350)

* 쟝 2세 Jean II Le Bon (1319-1364) : ‘필립 4세 Philippe IV’의 조카로 1293년에 태어나 섭정을 하다가, 1328년 영국왕 ‘에드워드 3세 Edouard III’가 왕권을 주장하자 서둘러 왕위에 등극. 1356년 ‘쁘와띠에 Poitiers’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 런던에서 볼모 생활을 하다가 1364년 런던에서 사망

* 샤흘르 5세 Charles V Le Sage (1338-1380) : 아버지인 ‘쟝 2세’가 영국에 볼모로 잡혀있는 동안, 왕권 대행 섭정을 히디기, 1364년 아버지가 런던에서 사망하면서 왕위에 올라 프랑스의 재정 체계를 새로이 확립하고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프로뱅스 Provinces’ 지방을 되찾음
* 샤흘르 6세 Charles VI Le Bien-Aime (1368-1422) : ‘샤흘르 5세’의 장남으로 1368년 12월 3일 파리에서 태어나 12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기 때문에 3명의 삼촌들이 섭정을 하는데,1392년 왕이 미쳐버리자 왕비인 ‘이자보’의 손에 프랑스가 놀아남

* 샤흘르 7세 Charles VII Le Victorieux (1403-1461) : 1403년 미친 왕 ‘샤흘르 6세’의 5번째 아들로 태어나지만 부왕이 미친 상태이고, ‘르와르 고성 지대‘의 ‘쉬농성‘에서 왕태자로써 위축된 생활을 할 때 ‘쟌 다르크 Jeanne d`Arc’의 도움으로 영국군을 축출
* 루이 11세 Louis XI (1423-1483) : ‘샤흘르 7세’의 장남으로 1451년 ‘샤흘로트 드 사브와 Charlotte de Savoie’와 재혼하면서 사브와 지역을 평정하고, 1461년 왕위에 올라 프랑스 군대를 재정비
* 샤흘르 8세 Charles VIII (1470-1498) : 1491년 ‘안느 드 브레따뉴 Anne de Bretagne’와 결혼을 하면서 ‘브르따뉴’지방을 프랑스로 귀속시키고, 신혼집으로 증축 공사를 하던 ‘앙브와즈’ 성의 입구에 머리를 다쳐 1498년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서 ‘발르와 왕조’ 끝
발르와-오흘레앙 왕조
* 루이 12세 Louis XII (1462-1515)
후손을 남기지 못한 ‘샤흘르 8세’의 사촌형제인데, 과부가 된 사촌 형수이며(평소 사모하던) 왕비 ‘안느 드 브레따뉴 Anne de Bretagne’와 결혼하여 ‘브르따뉴’ 지방을 프랑스 영토로 묶어둠. 1514년에 왕비가 죽자, 영국의 ‘헨리 8세’의 누이인 ‘마리 Marie d`Angleterre’와 결혼하지만,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1515년 1월 1일 파리에서 사망.
발르와 앙굴렘 왕조

* 프랑스와 1세 Francois I (1494-1547) : 후사를 남기지 못한 ‘루이 12세’의 뒤를 이어, 1515년 왕위에 오르면서 ‘발르와 앙굴렘 Valois-Angouleme’ 왕조가 시작되고, 1547년 3월 31일 ‘랑부이에 Rambouillet’ 성에서 사냥을 즐기던 중 급성 독감으로 갑자기 사망.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끌로 뤼쎄 Clos Luce’로 초청
* 앙리 2세 Henri II (1519-1559) : ‘프랑스와 1세’의 둘째 아들로 1533년 이탈리아의 ‘까트린 드 메디치 Catherine de Medicis’와 결혼하면서, 재정적으로 왕권 강화. 자신보다 18세 연상인 ‘디안느 드 쁘와띠에 Dianne de Poitier’와의 연애 행각은 유명
* 프랑스와 2세 Francois II (1544-1560) : ‘앙리 2세’와 ‘까트린 드 메디치’의 장남으로 1558년 어린 나이에 ‘마리 스튜어트 Marie Stuart’와 결혼하였으며, 1559년 15세에 왕위에 오르지만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1560년 사망
* 샤흘르 9세 Charles IX (1550-1574) : ‘앙리 2세’의 둘째 아들로, 형인 ‘프랑스와 2세’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자, 10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등극. 어머니 ‘까트린 드 메디치’가 ‘마거리트’ (마고 여왕)와 ‘앙리 4세’의 결혼식에 모인 신교도들을 학살한 ‘성 바르텔레미 Saint Barthelemy’사건
* 앙리 3세 Henri III (1551-1589) : 형인 ‘샤흘르 9세’의 뒤를 이어 1574년 왕위에 오르고, 1589년 ‘쟉크 끌레멍 Jacques Clement’ 수도승에게 암살당하면서 ‘발르와’ 왕조는 끝
부르봉 왕조 Les Bourbons 1589-1791

* 앙리 4세 Henri IV (1553-1610) : 1572년 ‘앙리 2세’의 딸인 ‘마고 여왕 La Reine Margot’과 결혼. 1589년 왕위에 오르는데, 고딕건축의 백미로 유명한 ‘샤르트르 대성당‘에서 도유식을 거행. 1598년 ‘낭트 칙령 Edit de Nantes’을 발표하여 종교전쟁을 종식시키고, 1610년 ‘라바이악 Ravaillac’에게 암살 당함
* 루이 13세 Louis XIII Le Juste (1601-1643) : ‘앙리 4세’와 ‘마리 드 메디치’ 사이에서 태어나 1610년 왕위에 오르고, 1615년 ‘안느 도트리쉬 Anne d`Autriche’와 결혼. 재무장관을 역임한 ‘리슐리외 Richelieu’ 추기경의 도움으로 상업을 발달시키고 프랑스를 풍족하게 만듬

* 루이 14세 Louis XIV Le Grand (1638-1715) : ‘루이 13세’의 큰아들로 태어나 1643년 5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어머니인 ‘안느 도트리쉬’와 추기경 ‘마자랭 Mazarin’이 섭정. 외교적인 안정을 추구하고 강력한 왕권을 확립
수 많은 전쟁을 통하여 재정을 고갈시키기고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베르사이 Versailles’ 궁전을 건설하였으며, 문화와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
* 루이 15세 Louis XV Le Bien Aime (1710-1774) : ‘루이 14세’의 증손자로 ‘베르사이 Versailles’ 궁전에서 태어나, 1715년 5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등극. 폴란드의 ‘마리 레진스카 Marie Leszcynska’와 결혼하였고, ‘코르시카 Corse’ 지방을 프랑스에 합병

* 루이 16세 Louis XVI (1754-1793) : ‘루이 15세’의 손자로 태어나 1770년 ‘마리 앙뚜와네트 Marie-Antoinette’와 결혼. 미국의 독립전쟁을 지원하고 악화된 재정을 채우기 위하여 ‘삼부회의’를 열지만, ‘프랑스 대혁명군’들에 의하여 1793년 1월 21일 ‘단두대 Guillotine’의 이슬로 사라짐
나폴레옹과 왕정복고 La Restauration
제 1 공화국이 지나고 황제로 등극한 ‘나폴레옹 1세’의 몰락 이후에 ‘루이 16세’의 형제인 ‘루이 18세 Louis XVIII’가 1814-1824년 왕위에 재임, ‘샤흘르 10세 Charles X’가 1824-1830년까지 왕위에 오르지만, 1830년 ‘7월 혁명’으로 유배를 떠나면서, 부르봉 가문의 역사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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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포인트를 동선에 자연스럽게 넣어 기억에 남는 일정으로 구성해드립니다.
속도/난이도/예산까지 반영합니다.
